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대립했으며,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항상 이 투쟁들은 투쟁 계급의 공동 몰락이나 사회의 혁명적인 개조로 귀결되었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 평민,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영주, 봉신, 동업자 조합 시민, 직인, 농노가 있었다. 봉건사회가 몰락하면서 탄생한 현대사회는 이 계급의 대립을 폐지하지 않고 새로운 계급들, 새로운 억압의 조건들, 새로운 투쟁 형태들로 대체 되었을 뿐이다. 현대는 브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두 개의 계급으로 나타난다.
시장의 수요 증가로 동업자 조합 방식으로 운영되었던 공업은 충분치 않게 되었다. 좀 더 발전된 형태인 공장제 수공업이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방식도 충분히 않게 되었고 때 마침 증기의 발달로 인한 기계 산업 생산의 혁명적 변화는 근대적 대규모 공업이 들어서는 초석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브르주아지가 그 산업의 주역 자리를 맡게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세계시장을 창출했으며 교통의 발달은 다시 산업 확대에 영향을 미쳤고 발전하는 속도만큼 브르주아지의 영향력도 커졌다. 그들의 자본은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부르주아지의 발전 단계마다 이 단계와 일치하는 정치적 진보가 병행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영주 아래에서는 억압받는 신분 계급이었고, 중세 자치도시에서는 무장한 자치연합체 였으며, 어떤 곳 에서는 독립적 도시 공화국이었으며 또 다른 곳에서는 군주국에서 납세의무를 지닌 제 3의 신분이기도 했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시기에는 군주와 귀족에 평형추 역할을 했다. 현대적 대의제 국가에서 그들은 마침내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 지배권을 얻은 부르주아지는 봉건적, 가부장제적 그리고 목가적인 관계들을 모두 파괴했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무정한 ‘현금 지불’ 외에 다른 어떤 관계도 사라지게 했다. 그들은 종교적, 정치적 환상들로 은폐된 착취를 직접적이고 무미건조한 착취로 바꿔놓았다. 가족관계조차 순전한 금전관계로 전환 시켰다.
부르주아지는 전체 사회관계들을 지속적으로 변혁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었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을 착취함으로써 모든 국가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으로 조직했다. 그들은 산업의 국가적 토대를 무너뜨렸다. 국내소비로부터 충족되었던 과거의 욕구와 달리 국가들은 상호 간의 전면적 교류, 전면적 의존하게 되었다. 그들은 비문명국가까지 부르주아지가 되도록 강요했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비문명 국가들은 문명국가에, 동양은 서양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부르주아지는 생산 수단, 소유 및 인구의 분산을 거부한다. 그들은 인구를 밀접 시키고 생산 수단을 한 곳으로 모으고, 소유를 소수의 손에 집중시켰다. 그 결과 정치적 중앙집중화가 나타났다. 봉건적 생산관계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고 자유경쟁이 등장했으며, 이에 맞는 사회적, 정치적 기구와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현대의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를 낳았다.
프롤레타리아 노동은 자립성을 상실한 단순한 노동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그들의 생계와 종족 번식을 위해 필요한 생산 수단으로만 제한된다. 따라서 임금은 줄어든다. 그러나 오히려 기계장치와 분업이 증가하는 만큼 노동의 양은 증가한다. 그들은 공장을 운영하는 개별의 부르주아의 종으로 살아간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발전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초기에는 노동자 개개인이 투쟁하지만 그 다음에는 한 공장의 노동자들이, 그리고 한 지역의 한 도농 부문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직접 착취하는 어떤 부르주아 개인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그들은 생산 도구 자체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들은 외국 상품을 파괴하고 기계를 부수며 공장에 불을 지르고 몰락한 중세 노동자의 지위를 다시 얻으려 애쓴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동원했고 절대 왕정의 잔재들, 지주들, 비산업 부르주아지, 소시민들과 싸워서 승리했다. 그렇게 쟁취한 모든 승리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부르주아지가 차지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더 거대한 대중으로 군집하고, 힘은 더 커지게 된다. 기계장치가 노동의 차이를 점점 더 없애고, 임금수준을 모든 곳에서 똑같이 낮추면 프롤레타리아 계급 안에서 이해관계와 생활 처지는 획일화된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계 장치는 브루주아지의 사회적 지위를 점점 더 불확실하게 하며 개별적인 노동자와 개별적인 부르주아 간의 충돌이 증가하게 한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서로 동맹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의 대중적 결속은 스스로의 단결의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단결한 결과이다. 상설연합체를 결성하며 이따금씩 투쟁은 폭동으로 분출된다. 노동자들이 승리하기도 하지만, 그 승리는 잠정적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일시적 성공이 아니라 단결이 점점 확산되는 것에 있다. 교통수단의 확대는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을 서로 연계시켜준다. 동일한 성격을 지닌 수많은 지역 투쟁들은 하나의 국가적 투쟁, 하나의 계급 투쟁으로 중앙 집중화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이처럼 계급으로 또 이를 통해 정당으로 조직되지만, 그것은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으로 매번 다시 파괴된다. 그러나 항상 더욱 견고한 형태로 부활한다.
부르주아지는 항상 투쟁 상태에 처해있다. 처음에는 귀족계급 나중에는 사업적 진보와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집단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이며 이 과정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정치 투쟁의 장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부르주아지와 대립하는 모든 계급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혁명적이다. 다른 계급들은 혁명적이지 않고 보수적이다. 모든 운동은 소수의 이해관계를 위한 운동이었다면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이해관계를 위한 다수의 자립적인 운동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발전을 가장 일반적인 단계들로 그려보면, 기존 사회 내에서 다소 은밀한 형태로 전개되던 내전이 하나의 공공연한 혁명으로 분출하고 부르주아지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과정이다.
현대 노동자들의 위치는 산업 발전과 더불어 올라가는 대신 자신의 계급이 처해있던 조건보다 더 못한 처치로 깊이 추락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 머물 능력이 없으며 그들 계급의 생활 조건을 규제적 법칙으로 사회에 강요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오로지 한가지 사실로 구별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이 각각 전개하는 다양한 국내 투쟁에서 국적과는 무관한 전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공동 이해관계를 강조하고 관철하는 한편,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부르주아지 간의 투쟁이 거쳐온 여러 발전과정에서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만들고 부르주아지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통해 정치권력을 정복하는 것이다.
공산주의를 특징 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시민적 소유의 폐지다.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획득한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노동은 소유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자본은 공동의 사물이며 오로지 많은 구성원의 공동 활동을 통해, 결국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공동 활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동될 수 있다. 자본이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속하는 공동 재산으로 변한다고 해서 개인의 재산이 사회의 재산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재산의 사회적 성격이 변할 뿐이다.
현재의 우리는 자유를 자유로운 상업, 자유로운 판매와 구매라고 이해한다. 자유로운 상행위는 중세의 시민에게만 의미를 가질 뿐, 공산주의가 거래를 폐지하고 시민적 생산관계와 부르주아지 자체를 폐지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산주의는 어떤 사람에게서도 사회적 생산물을 취득할 권력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 취득을 통해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 예속시키려는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적 소유의 폐지가 이루어지면 모든 활동이 중단될 것이며 총체적인 태만이 만연할 것이라고 그것을 반대한다. 만약 그들 주장이 옳다고 하면 시민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나태함으로 인해 몰락했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주장하는 사회는 이미 노동하는 사람들은 벌지 않으며, 거기서 버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폐지는 공산주의자를 비난하는 근거다. 그러나 자본에서 완벽하게 발전된 형태의 가족은 오로지 부르주아지에게만 존재한다. 부르주아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가정교육을 사회 교육으로 대체하면서 가족관의 유대를 없애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의 교육도 학교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사회를 통해 규정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단지 교육의 성격을 바꾸어 지배계급 영향에 떼어낸 것 뿐이다.
부르주아지는 공산주의자들이 부인 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언제나 존재해왔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부인 공유제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조국과 국적을 없애려 한다고 비난받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민족들이 국가로 분리되어 대립하는 현상은 이미 산업 생산과 이에 일치하는 생활 관계의 획일성과 함께 점점 소멸하고 있다. 국가 내부의 계급 대립이 붕괴하면 국가들 간의 적대적 입장은 사라진다. 이제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대립 속에서 움직여왔고, 이러한 계급 대립은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 대립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사회의 일부가 다른 일부를 착취한다는 것은 지난 모든 세기에 공통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계급 대립이 완전히 사라질 때 완벽하게 해체되는 의식의 형태 안에서 움직였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은 전래된 소유관계와 가장 철저하게 단절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동적 사회주의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봉건적 사회주의와 소시민적 사회주의, 독일 사회주의 또는 ‘진정한’ 사회주의이다. 봉건적 사회주의란 기독교적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적 특색을 부여한 것이다. 소시민적 사회주의란 프롤레타리아 계급 편에서 소시민적이 잣대로 부르주아 정권을 비판하고 소시민적 관점에서 노동자 정당 편에 가담하는 것을 말한다. 독일 사회주의란 독일의 절대주의 정부가 위협적으로 부상하는 부르주아지에 견제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정치 정당에 참여시키도록 한 것을 말한다.
일부 부르주아지는 시민 사회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기를 원했다. 이들을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라고 부른다. 그들은 현대사회의 삶의 조건들을 원하지만, 그 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투쟁과 위험은 원치 않는다.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투쟁이 덜 발전된 형태로 이루어지던 초기에 나타났다. 이 체계 창안자들은 계급들의 대립이나 지배 사회 자체내의 해체 요소들의 작용을 인식하기는 했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정치 참여로 이끌어 내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보수 및 급진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사회주의 민주주의 정당에 가담했지만 혁명 전통에서 유래하는 관용구나 환상들에 대해 비판적 태로를 취했다. 스위스 공산주의자들은 급진파를 지지했지만, 일부는 급진 부르주아들로 구성되었다.폴란드 공산주의자들은 토지 분배 혁명을 민족 해방의 조건으로 설정한 정당을 지지했다. 독일의 공산당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하자마자 그들과 공동으로 절대 왕정, 봉건 토지 소유와 프티부르주아주의와 싸웠다. 공산주의자들은 도처에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사태에 대항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모든 국가의 민주 정당들의 연합과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다.